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 뒤로 영어는 등급 따기 쉽다는 인식이 생겨 관심이 소홀해진 분위기입니다. 더불어 수학하기도 바쁜 요즘 아이들 영어 선행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만만하게 보았다는 낭패보기 쉬운 영어 교육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유아기 때는 영어 노출만 하세요.
이 시기에는 공부라고 할게 없습니다. 그저, 아이에게 영어를 조금씩 노출만 해주세요. 한글 그림책들 사이에 영어책도 한 권씩 넣어 주는 정도면 됩니다. 영어 책보다 한글책 많이 봐야 합니다. 다만, TV 틀어 주실 거면 디즈니나 넷플릭스 등에서 영어로 틀어주세요. 처음부터 영어로 틀어주셔야지, 한글로 시청해 버릇하면 나중에 영어로 틀어줄 때 답답하다고 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관련 비싼 교재나 프로그램 등록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은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기에는 투자 대비 얻는 것이 너무 한정적일 뿐더러 나중에 교육비 정말 많이 들어갑니다. 이 시기에 많이 아껴두세요.
2. 영어 유치원 vs 일반 유치원, 어디 보낼까?
5세가 되면 비싼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말지 생각해 보는 시기입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고민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내 아이의 영어 공부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이냐를 생각해 보시면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로서의 영어 실력 향상이 우선이라면 영어 유치원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수능/내신 고득점을 우선한 영어 공부라면 일반 유치원 가셔서 교육비 아껴두세요.
언어로서의 영어 교육을 원한다면?
우리아이가 궁극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영어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고 싶다면, 영어 유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더구나 아이가 책을 좋아하며 언어적 감이 있다면 영어 유치원에서 일취월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단, 영어 유치원을 보낼 때 아이가 너무 가기 싫어하면 미련 없이 그만두세요. 그리고 영어 유치원만 보내 놓으면 당연히 영어 잘하는 거 아닙니다. 같은 영유 3년 차라도 졸업할 때 보면 실력은 천차만별입니다. 기왕 비싼 돈 들여보내셨으면 숙제할 때도 제대로 해갈 수 있도록 같이 신경 써 주시고, 책과 영상 노출도 적극적으로 많이 해 주셔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교과의 한 과목으로서 영어를 바라본다면?
나는 우리 아이가 나중에 시험 잘봐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영어 공부하는 것이고, 스피킹은 본인이 필요해서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한다면 미련 없이 일반 유치원 보내셔도 됩니다. 이 목적이라면 본격적인 영어 교육은 초등 가서 해도 됩니다. 대신, 일반 유치원 보내면서 집에서 영어 비디오와 책은 꾸준히 노출 시켜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6~7세에 엄마가 파닉스 교재 사서 병행해 주세요. 시중에 좋은 교재가 많으니 고르시면 되고, 발음이 걱정되면 CD 틀어 주시면 됩니다. 직장맘 이시면 파닉스 떼주는 동네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들 계시니 활용해 보세요.
만약 주변에 일반 유치원이지만 영어 프로그램을 신경 써서 다뤄주는 곳이 있으면 적극 추천합니다. 기본적인 파닉스는 유치원에서 잡아주고 적당한 노출도 돼서 훨씬 수월합니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하면 보면 보통 대형 어학원으로 가서 원어민과 수업을 합니다. 이 경우, 아이가 열심히 잘한다면 초등 고학년 혹은 중등 때 수능 영어가 완성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회화를 하기는 하지만 탁월한 수준도 아니고 한국식 시험 보면 구멍이 보이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음을 참고하세요.
일반 유치원을 졸업하면 초등 가서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처음 하는 만큼 한국 선생님과 수업하는 학원을 갈 확률이 높습니다. 학습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아이가 갈수록 재미없는 과목으로 느낄 수도 있으니 유의하세요. 하지만 아이가 열심히 잘했다면 중학교 가서 오히려 학교 시험 성적은 더 잘 나올 수도 있습니다.
늘 그렇다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그럴 수도 있음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3. 초등 시기 영어 공부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 한글책 수준을 높이는 게 먼저입니다. (★★★★★)
어학원에 다니다 보면 미국 교과서라는 것들로 진행되는데 글밥도 글밥이지만 다루는 주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야기 글은 그나마 쉽지만 Science나 Social 분야를 다루는 글들은 배경지식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어요.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니 어느 정도 이해하며 수업은 나가며 테스트도 그럭저럭 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쌓은 실력은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격일 수 있습니다. 초등 고학년 돼서 학원 옮기려고 할 때 레벨 안 나와서 멘붕 오는 경우의 상당수는 여기에 속합니다.
영어는 한글로 된 글을 이해하는 수준 이상으로 잘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도 고등 과정이나 수능을 놓고 보면 한글 독서 수준을 높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 학원에서 단어 외울 때 한국말로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외우지 않게 해주세요.
예를 들어 "reasonable- 합리적인"이라는 단어를 시험 본다고 할 때 달달 외워서 맞출 수는 있습니다. 근데 한국말로 합리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면 시험용 단어 암기 밖에 안 됩니다. 독해에 reasonable 단어가 나와도 문맥 이해가 안됩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한글 사전을 찾아보게 하던가 부모님이 옆에서 한글로 예문을 들어주며 설명해 주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초등 고학년 되면 한국식 문법 꼭 학습해 주세요.
보통의 아이들은 학원 다니면서 꾸준히 문법 공부를 반복 학습합니다. 하지만 배우긴 배웠는데 정리가 안 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방학 때는 문법 특강이나 인강으로 전체를 훓터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문법은 문법 시험문제를 잘 풀기 위해 공부하기도 하지만, 고등 가서 긴 지문들을 해석하기 위한 기본이 되기도 하니 중요하게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원어민이 수업하는 대형 어학원 다니는 친구들은 한국식 문법 수업 특히 꼭 따로 해주세요. 이런 학원의 경우 문법 배우는 시간 비중이 적기도 하고, 그나마도 영어로 문법을 배우다 보니 중학교 가서 한국식 문법 용어 들으면 헤맬 수 있습니다.
- 초등 시기에는 4대 영역을 고루 다뤄주세요.
수능에서는 리스닝과 리딩을 보지만 중등/고등 수행에서는 스피킹과 라이팅 실력도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때 그렇게 쉬운 영어를 가르쳐 놓고, 중등 올라갔더니 정해진 주제에 대해 영어로 영작한 후 발표하는 게 첫 수행이었습니다. 초등 시기는 기본 실력을 쌓아가는 시기이니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게 골고루 하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이전에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단어 암기입니다. 단어를 모르면 뭘 할 수가 없습니다.
- 영어 글을 읽을 때 제대로 이해하고 읽는지 체크해 보세요.
이 부분은 국어 독해력 문제 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안 좋은 습관이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해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글은 글대로 읽기만 하고 문제 보고 다시 본문 읽으면서 감으로 답을 찾는 것입니다. 지문을 읽고 나서 아이한테 무슨 내용인지 얘기해 볼 수 있게 해 보세요. 대답을 잘 못한다면 단어나 내용이 어려워서 정말 이해를 못했거나, 습관적으로 대충 읽었거나 등 원인을 찾아서 고쳐나가야 합니다.
4. 중학교에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나?
- 영어의 8할은 단어입니다. 어지간한 고등 수준 단어까지 암기해 놓으셔야 합니다. 어휘가 되어 있지 않으면 리스닝, 리딩, 라이팅, 스피킹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휘 책 추천은 나중에 따로 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어법 공부에 시간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수능에서는 문법 문제가 별로 없지만 고등 내신은 문법 문제를 매우 까다롭게 내서 여기서 내신 등급을 가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예를 들면, 중학교 때는 "다음 중 to 부정사의 용법이 다른 것은?"이라고 문제를 주고, 보기중 4개는 형용사적 용법, 다른 1개는 명사적 용법으로 해서 단순히 고르게 했다면, 고등학교 때는 지문에 밑줄 5개 쳐놓고 다음중 어법상 어색한 것을 고르게 합니다. 근데, 밑줄친 부분을 보면 1번은 to부정사 2번은 시제 3번은 그 외 다른 것들을 알아야 고를 수 있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 늦어도 중3부터는 고1 모의고사 문제집부터 풀리세요. 고등 가면 학교에 따라 내신 시험이 모의고사 형태로 나오기도 하고, 어차피 수능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중등까지 수능 영어는 끝내 놓고 가면 좋습니다. 어려운 아이들도 있겠지만 영어를 그 정도는 해놔야 고등학교 가서 다른 과목에 집중할 여유가 생깁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5. 고등학교 때도 영어 학원 다녀야 하나?
사실 중학교 때 수능 영어를 거의 완성해 놓았다면 학원 안 다니고 감만 잃지 않게 문제집 풀면서 유지해 나가거나 내신 때만 학원에 가도 됩니다. 하지만 아직 수능 모의고사 점수가 잘 안 나온다면 서둘러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수능 최저 기준이 있는 대학을 지원할 경우, 영어는 수능 최저를 맞추기 위한 전략과목입니다. '국어, 수학, 영어, 탐구 중 3개 합 5등급'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4개 과목 중에 3개 과목이 2+2+1등급 이거나 1+1+3등급 이거나 해서 5등급 이내로 맞춰야 된다는 겁니다. 이럴 경우 절대평가인 영어를 1등급을 확보해 놓은다면 다른 과목 등급에 여유가 생겨서 다른 과목에서 등급 맞추기가 덜 부담스럽습니다.
고등학교 내신을 잘하려면 중학교 때 기본 실력을 잘 쌓아놔야 합니다. 중등 내신 시험에 포커스를 두고 영어 공부를 하면 고등학교 와서 매우 힘듭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서는 A라는 문법 문제를 제출할 때 교과서나 프린트에 있는 지문에서만 출제하는 게 아니라 외부 지문을 가지고 와서 그 안에서 A라는 문법을 물어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문은 처음 보는 거지만 A라는 문법 내용은 배운 거기 때문에 배운 범위에서 출제되었다고 봅니다. 지문 다 암기한다고 최고 점수를 받기 힘든 이유입니다.
글을 적다 보니 오늘도 내용이 길어졌네요. 영어는 아이들 실력이 천차만별인 만큼 딱 이거다 하고 정해서 말하긴 어렵고 정답은 없습니다. 내 아이의 상황에 맞게 잘 판단하시기 바라며 마지막으로 어떤 과목이든 빨리 서둘러서 하지 말고 어려서부터 꾸준히 하시라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네요. 지나고 보니 자기 속도에 맞게 꾸준히 해 온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낳는 확률이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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